여주 신륵사 다층전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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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
여주 신륵사 다층전탑은 신륵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전탑이다. 나옹 선사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, 높이 약 9.4m로 2단 기단 위에 3단 계단을 쌓고 그 위에 흙벽돌로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. 기단과 계단은 화강암으로, 탑신은 6층까지 흙벽돌로 쌓았으며, 지붕돌이 얇고 벽돌 사이를 넓게 떼어 면토를 바르는 등 전통적인 전탑 양식과 다른 특징을 보여 중국에서 전래된 새로운 양식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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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신륵사 -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
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는 고려 우왕 5년에 건립된 석비로, 나옹선사의 일생과 사상을 기록하고 있으며,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다.
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- [유적/문화재]에 관한 문서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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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본 정보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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명칭 |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|
영문 명칭 | Multi-story Brick Pagoda of Silleuksa Temple, Yeoju |
문화재 정보 | |
유형 | 보물 |
지정 번호 | 226 |
지정일 | 1963년 1월 21일 |
주소 |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(천송동, 신륵사) |
시대 | 고려시대 |
관리 | 신륵사 |
수량 | 1기 |
꼬리표 | 여주 신륵사 |
문화재청 ID | 12,02260000,31 |
추가 정보 | |
참고 자료 | [세종신문] 여주의 문화재를 소개합니다 ⑨ - 신륵사 다층전탑(1) |
2. 역사
2. 1. 건립 배경
신륵사동대탑수리비(神勒寺東臺塔修理碑)는 다층전탑의 수리 내용을 기록한 비석으로, 전탑의 유래와 구성 등을 확인할 수 있다.[6]다층전탑은 '나옹탑'이라고 불렸으며, 이는 나옹 선사와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. 나옹 선사는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.[6] 신륵사의 연혁을 기록한 탑지가 봉안되어 있으며, 기단 하부에는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.[6]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, 이 탑이 나옹 선사의 다비식 이후 사리를 안치하기 위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.
이 전탑의 정식 명칭은 원래 '신륵사 동대탑(神勒寺 東臺塔)'이었으며, 건립 이래 3차례에 걸쳐 수리되었다.[6]
2. 2. 건립 시기
탑의 건립 시기는 정확하게 특정하기는 어려우나, 벽돌에 새겨진 무늬 등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 전기로 추정된다.[3] 탑 북쪽에 위치한 신륵사동대탑수리비에 '숭정기원지재병오중추일립(崇情紀元之再丙午仲秋日立)'이라는 기록이 있는데, 이는 조선 영조 2년(1726)을 가리킨다.[3] 그러나 이는 탑을 해체하고 수리한 시기를 나타내는 것이므로, 현재 탑의 모습이 건립 당시의 원형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.[3] 처음 세워진 이후 여러 차례 수리되는 과정에서 벽돌의 반원 무늬 배열 상태가 어지럽혀지고, 전체 형태가 다소 변형된 것으로 보여진다.[3]2. 3. 수리 및 보수
신륵사동대탑수리비의 기록에 따르면, 다층전탑은 건립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수리되었다.[6] 여러 차례의 수리 과정에서 벽돌의 반원 무늬 배열 상태가 흐트러지고, 전체적인 형태가 다소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. 원래 '신륵사 동대탑(神勒寺 東臺塔)'으로 불렸으며, '나옹탑'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나옹 선사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. 나옹은 1376년 5월 15일에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.[6]3. 구조 및 특징
3. 1. 외형
여주 신륵사 다층전탑은 전체 높이가 약 9.4m이다.[2] 2단 기단 위에 3단 계단을 쌓고, 그 위에 여러 층의 탑신을 올린 구조이다. 기단과 계단은 화강암으로, 탑신부는 흙벽돌로 만들었다. 6층까지 흙벽돌로 쌓았으나, 그 위에 몸돌 하나를 더 올려 7층처럼 보이기도 한다.통일신라시대 전탑에 비해 몸돌에 비해 지붕돌이 매우 얇아 독특한 인상을 준다. 지붕돌 밑면 받침은 1∼3층이 2단, 4층 이상은 1단이며, 지붕돌 위로도 1층은 4단, 2층 이상은 2단씩의 받침을 두어 특이한 형태를 보인다. 꼭대기에는 얇은 머리장식이 있다.[3] 기단에 사용된 장대석 중 최하단의 중간 돌과 제2단의 아래 돌은 다른 부재보다 높은 돌을 사용했다. 신라시대의 전탑이 거의 간격을 두지 않고 벽돌을 쌓은 데 비하여, 이 전탑은 벽돌 사이를 넓게 떼어서 면토를 바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. 이 전탑은 모든 형태가 전통의 전탑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어, 중국으로부터 전래한 새로운 양식을 따라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.[4][5]
3. 2. 재료 및 축조 방식
여주 신륵사 다층전탑은 높이 약 9.4m이다.[2] 탑은 2단 기단(基壇) 위에 3단의 계단을 쌓고, 그 위에 여러 층의 탑신(塔身)을 올린 형태이다. 기단과 계단은 화강암으로, 탑신부는 흙벽돌로 6층까지 쌓았다. 그 위에 몸돌 하나를 더 올려놓아 7층처럼 보이기도 한다. 지붕돌이 몸돌에 비해 매우 얇아 독특한 인상을 준다. 지붕돌 밑면 받침은 1∼3층이 2단, 4층 이상은 1단이며, 지붕돌 위로는 1층은 4단, 2층 이상은 2단씩의 받침을 두어 특이하다. 꼭대기에는 얇은 머리장식이 있다.[3]기단에 사용된 장대석 중 최하단의 중간 돌과 제2단의 아래 돌은 다른 부재보다 높다. 신라시대 전탑이 벽돌을 거의 간격 없이 쌓은 것과 달리, 이 전탑은 벽돌 사이를 넓게 떼어서 면토를 발랐다. 이러한 특징은 전통적인 전탑 양식과 다르게, 중국에서 전래된 새로운 양식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.[4][5]
4. 위치 및 의의
4. 1. 입지 선정
여주 신륵사 다층전탑은 나옹 선사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한 구조물로, 바로 아래에 한강이 굽어보이는 암석 위에 세워졌다.[2] 이는 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에 걸쳐 유행하던 특수한 점지 경향의 유풍이라고 할 수 있다.[2]4. 2. 상징성
이 탑은 나옹 선사의 다비식 이후에 사리를 안치하기 위한 구조물로 세워진 것이다.[2] 바로 아래에 한강이 굽어보이는 암석 위에 건립되었는데, 이는 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에 걸쳐 유행하던 특수한 점지 경향의 유풍이라고 할 수 있다.[2]5. 갤러리
참조
[1]
웹인용
"[세종신문] 여주의 문화재를 소개합니다 ⑨ - 신륵사 다층전탑(1)"
http://www.sejongnew[...]
2021-08-05
[2]
웹인용
여주 신륵사 다층전탑(驪州神勒寺多層塼塔) -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
http://encykorea.aks[...]
2021-08-04
[3]
웹인용
보물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(驪州 神勒寺 多層塼塔) : 국가문화유산포털 - 문화재청
https://www.heritage[...]
2021-08-04
[4]
웹인용
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{{!}} 경기문화재연구원
https://gjicp.ggcf.k[...]
2021-08-04
[5]
서적
문화재대관 보물편 : 석조 Ⅰ(개정판)
http://www.krpia.co.[...]
[6]
웹인용
신륵사 다층전탑 - 여주시사
https://www.yeoju.go[...]
2021-08-0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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